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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노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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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송형노 개인전
날짜 2011.11.30-2011.12.15
작가명 송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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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노 개인전

< 3 송형노 개인전  “DREAMing”>

2011/11/30 () – 2011/12/15()


동화의 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콘크리트 벽 너머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돼지, 벽 옆에 서있는 거위, 조각처럼 앉아있는 백호, 콘크리트 기단 위에 앉아 토끼인형과 마주하는 기린 등 동물들의 부동의 자세가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배경의 하늘은 포장된 선물 상자처럼 그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을지 궁금하다.

송형노 작품에서 동물 이미지들이 있는 공간과 그 상황은 가상적인 배열이어서 우리의 상상을 기반으로 유동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의 동물들은 형태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감각적 회화 분위기와 다르게 그림 안에 구성된 부분들과 세부에 의해 기호들로 조직 되어있고, 관계 해석으로 언급될 수 있는 암시들로 되어 있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자신을 의미의 세계로 소생시켜주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송형노의 이라는 작품의 주제처럼 그의 그림은 초현실적이라 말한다. 대상을 꼼꼼하게 그리며 탄탄한 입체의 표현법과 배경에 나타나는 하늘과 구름이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동물들과 콘크리트 벽, 푸른 하늘의 대비는 현실을 넘어 다른 세계로 향하고 있다. 동물들은 배경에 있는 콘크리트 벽과 그림, 하늘과 소통하면서 가상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

주지하듯이 이미지는 현실의 부재를 감추고, 현실의 가면이며 왜곡이다. 이미지는 우리 앞에 실재하지 않는 사물들을 있는 것처럼 연상하게 할뿐이지 실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림의 이미지는 개인의 기억들, 다양한 상상력에 의존하여 새롭게 해석되고 태어나기 마련이다. 송형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실재 동물들을 재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이들의 그림동화책에 등장하는 가상적 이미지들의 재현이다. 즉 재현의 재현이다. 따라서 관람자인 우리도 어릴 때의 상상세계로 돌아가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동화책을 보면서 실제와 가상을 오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그의 작품은 초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넘어서 근원적인 본질을 찾기 위해 우리를 무의식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송형노의 작품에서도 그러한 무의식을 경험할 수 있다. 작가의 무의식, 모든 사람이 지닌 무의식이 그려져 있다.

말, 낙타, 거위의 배경에 마스킨 테이프로 뒤에 붙여진 풍경들 낙타 옆의 사막, 말, 거위 배경의 초원에서 작가는 이 그림이 이미지임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이국적 여행지를 그리워하며 벽에 붙여놓은 풍경화처럼 인쇄된 풍경은 현실과 거리를 지닌 채 기호와 기호 사이를 떠돈다. 마치 앞에 서있는 ‘말과 거위가 진짜이고 배경은 가짜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벽에 붙어있는 풍경화와 동물의 배치는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연상하게 한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그림이라고 필기체로 단정하게 그림 위에 쓰고 있지만 송형노는 배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은 그림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마그리트 그림에서의 차이점과 동질성이 공존한다.

둘 다 관객들에게 “왜 이런 언급을, 표시를 하였을까?”라고 질문을 유도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존재의 부재로 설명하지만 송형노는 이미지와 이미지 관계를 현대인의 무의식으로 접근한다.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상상력이다. 즉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암시한다. 현대인은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다는 이미지로 소통되는 심리적 질서 위에 있기를 욕망한다. 이와 같은 송형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가 추구하였던 사유의 본질로서 무의식에 접근하는 시각이다.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서있는 동물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자세처럼 경직되어있고 푸른 하늘의 구름에서 자연을 연상하면서 꿈을 키우고 있는 도시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는 현대인의 욕망과 일치하는 동화속의 동물들의 모습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이미지는 사물의 부재’라고 강조하지만 테크놀로지 시대의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인의 욕망은 실제와 가상의 거리가 사라지게하고 이미지의 허구를 부정 할 수 없게 한다. 현대인에게 이미지는 본래 지닌 가치보다는 다른 이미지와의 차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의미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사물의 가치가 사라지고 개인적으로 분류한 이미지가 사물의 부재를 넘어서는 것처럼 현대인의 이미지는 상대적인 욕망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송형노의 동물들은 우리 시대의 시각으로 볼 때 세부적인 것들의 차이로 의미가 구성되어있다. 배경에 있는 콘크리트 벽과 푸른 하늘이 이루는 대조같이 것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있는 이러한 대비는 동물들의 이미지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상 세계를 만든다.

동화속의 이미지의 부드러움을 깨고 딱딱하게 공간을 분리하는 콘크리트 벽은 푸른 하늘의 가벼운 구름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미래로 향하게 한다. 미래는 정말 푸른 것일까? 작품에서 얼핏 보이는 동화처럼 푸른 하늘 넘어 상상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을까?

동물그림들은 어릴적 상상의 세계로 돌아가 연상하여야 한다. 어릴 때는 미래를 연상하였지만 지금의 작가는 과거에 있었던 미래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다. 두꺼운 종이 위에 인쇄된 그림책의 동물들처럼 부동의 자세로 시간을 정지시켜 놓았다.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보아왔던 동물들의 자세는 사실적이지만 작품에서 사실이 아님을 그들의 자세로 나타낸다. 송형노가 언급한 초현실(surreal)은 멈추고 싶은 과거의 한순간이면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한계이다. 이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고 현대인이 부여한 사물의 기능을 이미지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작품은 소비의 대상이지만 내용을 구성하는 텍스트는 작품을 소비에서 구해 내어 작가의 사고, 작업, 생산, 실천을 수용할 때 가치가 있다.

조광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Jo Kwang-suk)